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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반도체사업 40년, 도전과 창조의 역사

 

# 오늘날 한국경제의 동력이자 삼성전자를 글로벌 기업으로 부상시킨 반도체사업. 삼성에서 반도체사업이 시작된 지 약 40년이 흘렀습니다. 반도체사업에 진출하게 된 배경과 역경을 딛고 세계시장에서 성공하기까지의 열정과 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 27년의 뒤쳐진 첫 걸음 '한국반도체 인수, 부품사업의 시작'


1974년 12월 삼성전자의 반도체사업은 첫발을 내딛게 됩니다. 이미 반도체산업의 성장궤도에 올랐던 미국과 일본보다 27년의 뒤쳐진 출발이었습니다.


당시 미국과 일본에서는 컴퓨터와 반도체가 화두였습니다. 미국은 1947년  '윌리암 쇼클레이'에 의해 세계 최초로 TR(트랜지스터)를 개발하고 이 후, 1959년 페어차일드사가 IC(집적회로) 개발을 하면서 세계 반도체산업의 문을 열었습니다.


▲ 1974년 한국반도체 인수


반면, 우리나라는 1965년 미국 코미그룹의 투자로 설립된 고미반도체를 시작으로, 1974년 1월 KEMCO와 미국 현지법인인ICⅡ가 합작하여 선진국형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웨이퍼 가공생산을 위해 '한국반도체'가 설립되었습니다.


당시 삼성전자는 세계 오일 파동으로 경영난을 겪게 되고 이를 계기로 이건희 회장은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하이테크산업에 진출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전자부문을 살릴 수 있는 길은 오직 핵심부품인 '반도체의 자급'이라 판단, 1974년 12월 삼성전자는 공장 설립 과정에서 파산 직전인 '한국반도체'를 인수 합니다. 반도체 투자에 대한 내부 반대의견이 많았지만,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야말로 삼성전자의 미래 씨앗이 될 것이라 확신하며 과감한 선행투자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한국반도체를 반도체사업부로 흡수∙개편을 단행하며 내실을 기하지만 자체 기술이 없는 반도체사업은 나날이 고전을 겪게 됩니다. 자본금을 모두 잠식한 채 가까스로 몇 번의 위기상황을 넘겼지만, 이미 삼성반도체는 그룹의 미운 오리로 낙인 찍혀 있었습니다.



이러한 반도체사업의 부진을 경험부족이라 판단, 故이병철 선대회장은 삼성보다 훨씬 앞서 반도체사업을 해 온 A사의 B회장에게 자문을 구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합니다.


그러나, B회장의 거절은 역으로 삼성전자가 반도체사업을 진출하게끔 만든 원동력으로 작용하였고 故이병철 선대회장은 반도체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조립 위주로 발전되어온 한국의 반도체사업,'누가 뭐라고 해도 반도체,해야겠습니다'


1983년 2월 8일은 오늘날 삼성의 운명을 바꿔 놓은 중대한 결정이 이루어진 날입니다. 故이병철 선대회장은 오랜 고심 끝에 동경에서 반도체사업 진출을 결심합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삼성은 반도체사업에 대한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공식발표 하지만, '3년 안에 실패할 것이다',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 등 재계의 반대 여론과 업계의 냉소가 뒤따랐습니다.


반도체사업은 인구 1억 이상, GNP 1만 달러 이상, 국내 소비 50% 이상이 되어야 가능한 사업이지만, 당시 한국의 실정은 이 중 어느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삼성은 반도체사업은 나라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사업, 즉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실현시킬 수 있는 산업이라 확신했고, 정면 돌파에 나섭니다.



■ 기술확보를 위해 몸으로 뛰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선언과 동시에 64K D램 기술 개발에 착수한다는 발표였습니다. 당시, 국내 반도체사업은 반제품을 들여다 가공, 조립 하는 수준으로, 삼성의 경우 가전제품용 LSI (고밀도 집적회로)를 간신히 생산하는 단계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누가 봐도 선진국형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D램 생산은 무모한 도전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64K D램 개발을 발표하기까지 삼성전자는 수 차례의 시장조사와 사업구상, 인재영입과 육성을 통해 반도체사업의 미래를 그려 나가기 시작합니다.



■ 6개월 만의 신화, '64K D램 개발 및 기흥공장 완공'


1983년 반도체사업 진출 선언과 함께 삼성은 첫 번째 메모리 제품 사업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D램을 선택하고, 당시 세계 D램 시장의 주력 제품인 64K D램 개발을 그 해 5월부터 착수합니다.


▲ 1983년 64K D램 개발 성공


그리고 불과 6개월 만인 1983년 12월 1일, 국내 최초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하며 미국, 일본에 비해 10년 이상 격차가 났던 반도체 기술을 4년 정도로 단축시켰습니다. 이는 한국의 기술력을 세계에 과시한 기적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반도체 사업 초기는 기술 확보 싸움이었다. 일본경험이 많은 내가 거의 매주 일본으로 가서 반도체 기술자를 만나 그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도움될 만한 것을 배우려 노력했다."


이건희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 1987년 8월, 3라인 착공식


또한, 기흥 지역을 공장부지로 최종 확정하고 일반적으로 2~3년이 소요되는 공사를 착공 6개월 만에 완공하며 국내 반도체산업의 메카 '기흥밸리'를 탄생시키는 기적을 이룹니다.


64K D램의 호황이 끝나기 전에 시장에 진입해야 한다는 일념 하에 설계와 시공 등 모든 작업을 동시에 추진하는 '동기화(同期化) 전략'을 펼치며 전 임직원이 일심동체가 되어 착공에 힘을 모은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 10년 만에 메모리업계 세계 정상을 오르는 첫 걸음이었을 뿐입니다.



■ 20년 간 지속되는 신기록 역사, '시장이 없으면 만든다'


이후 1992년 삼성전자는 64M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 메모리 강국인 일본을 처음으로 추월하며 선두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1994년 256M D램, 1996년 1Gb D램을 세계 최초로 연달아 개발하면서 차세대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게 됩니다.


    ▲ (순서대로) 2002년 OneNANDTM, 2006년 OneDRAMTM 개발


▲ 2007년 Flex-OneNANDTM 개발


2002년에는 손가락 마디만한 USB 메모리의 대중화, OneNANDTM(낸드플래시+노어플래시) 개발, 2006년 차세대 메모리 사업 육성을 위한 OneDRAMTM 개발, 2007년 대용량∙초고속의 Flex- OneNANDTM 개발로 고성능 스마트폰에서 퓨전 메모리 시대를 열어 나가고 있습니다.



■ 반도체사업의 차세대 성장동력, 시스템LSI '모바일 솔루션'


삼성전자는 90년대 중반부터 시스템LSI 분야를 반도체 신성장 동력으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1994년 멀티미디어용 정지화상과 동화상을 압축, 재현할 수 있는 세계 최고 DSP(Digital Signal Processor)의 국내 최초 개발을 시작으로, 1GHz 차세대 듀얼코어 모바일 AP(Application Processor)출시와 모바일 AP브랜드 '엑시노스(Exynos)'  론칭으로 시스템LSI 사업의 글로벌 위상을 제고하고 있습니다.

 

▲(순서대로) 고성능 저전력 Exynos 4212, 세계최소 120만 화소 CIS


또한, CMOS 이미지 센서는 2년 연속 휴대폰용 센서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감도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이면조사형 센서 기술에서도 앞서가고 있습니다.



한 발 앞서 세계 최초, 최고의 제품을 선보이며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를 포용하며, 흔들림 없는 미래를 선도하는 그 신화는 계속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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